[신찬영 교수·대표 시리즈 칼럼: 10편] Discovery by Design은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한국 바이오가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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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영 교수·대표 시리즈 칼럼: 10편] Discovery by Design은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한국 바이오가 구축해야 할 새로운 신약개발 생태계
최종적으로 필요한 치료제의 모습을 역으로 설계하고, 프로젝트의 과학적 타당성, 임상적 가치 및 사업화 가치를 함께 검토하며, 의사결정에 필요한 근거를 우선적으로 만들고, 개발과 관련된 위험 지형을 이해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의사결정 경로를 선택하며, 실제 연구와 개발을 실행 프레임워크에 연결하여, 새로운 근거가 도출될 때마다 프로젝트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 사이클을 이루며 더 나은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진화시키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누가 그리고 어떻게 이 시스템을 실제로 운영할 것인가? Discovery by Design 시스템 구성 요소가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도 이를 실제 프로젝트에서 지속적으로 운영할 사람과 조직이 없다면 아무런 가치도 만들지 못한다. Discovery by Design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 정부, 대학, 병원, 학회, CRO, 투자자와 전문가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연결되고, 근거 기반 결정, 실행 및 반복 개선(Re-iteration)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신약개발 생태계가 필요하다.
한국 바이오는 지난 20여 년 동안 크게 성장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정부 연구개발 투자는 크게 증가하였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는 새로운 타깃과 치료기술이 지속적으로 발굴되었다. 바이오벤처의 수도 크게 늘었고, 바이오 인큐베이터와 액셀러레이터,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실용화 지원조직, 후보물질 검증 및 유효성 평가 지원시설, 비임상과 임상시험 지원체계도 확대되었다. 대학과 병원에는 우수한 연구자와 임상의가 있다. 국내 CDRO, CRO의 역량도 꾸준히 발전했으며, 해외의 전문 기업을 활용할 수 있는 접근성도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다. 벤처캐피털과 제약기업의 투자도 증가했다. 우리나라에는 신약개발과 관련된 기반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별적으로 보면 상당히 많은 자원이 이미 존재한다. 그런데도 하나의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왜 이러한 지원과 역량이 기대했던 만큼 성공적인 신약개발 프로젝트로 연결되지 못했을까? 물론 신약개발은 본질적으로 성공 확률이 낮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추어도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위험을 너무 늦게 발견하고, 중요한 근거가 빠진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적응증이나 환자군을 수정해야 할 시점을 놓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를 모두 신약개발의 본질적인 불확실성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지원의 양만이 아니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원의 구조와 운영 방식에 있었다.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연구가 아니라 연결이었다. 우리나라의 신약개발 지원은 대체로 기능별, 단계별, 기관별로 나누어져 있다.
⚫ 어떤 사업은 기초연구를 지원한다. 어떤 사업은 후보물질 발굴을 지원한다.
⚫ 어떤 사업은 유효성 평가를 지원하고, 또 다른 사업은 비임상 독성이나 임상시험을 지원한다.
⚫ 바이오 인큐베이터는 공간과 창업 교육을 제공한다.
⚫ 바이오 액셀러레이터는 사업계획 수립과 투자 연결을 지원한다.
⚫ 지방자치단체의 실용화 조직은 지역 내 시설과 기업을 연계한다.
⚫ 유효성 평가센터는 특정 질환모델이나 평가기술을 제공한다.
각각의 지원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 문제는 이들이 하나의 신약개발 프로젝트 안에서 지속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보물질 발굴 지원이 종료된 뒤 어떤 근거를 추가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유효성 평가를 수행했지만, 그 결과가 후보물질 선택이나 적응증 변경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지원사업에서 확보한 데이터가 다음 지원사업의 질문과 이어지지 않는다. 한 기관에서 만들어진 결과가 다른 기관으로 넘어갈 때 연구의 맥락과 의사결정 기준이 사라지기도 한다. 사업은 완료되었지만, 프로젝트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많은 지원 프로그램은 하나의 연구, 하나의 시험 또는 하나의 단계는 지원했지만, 새로운 근거를 종합하여 프로젝트를 다시 평가하고 다음 실행계획을 수정하는 반복 개선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지원의 초점을 한 단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실험비나 시험비만이 아니다. 신약개발과 관련하여 어떤 주요 증거나 근거가 필요한지 결정하고, 적절한 시험과 수행기관을 선택하며, 결과를 해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프로젝트를 다시 설계하는 “통합 실행” 자체를 지원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바이오벤처가 새로운 중추신경계 후보물질을 개발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업은 BBB 투과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특정 BBB 시험비만 지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후보물질 단계에서 in vitro 선별시험이 필요한지, 설치류에서 유리형 물질의 뇌 중 농도를 확인해야 하는지, PK-PD 분석을 우선해야 하는지, 사람에서 사용할 타깃 결합 바이오마커나 PET tracer 개발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시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후보물질을 변경할 것인지, 구조를 최적화할 것인지, 말초 적응증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과 실행을 하나로 묶어 지원하지 않으면 시험 하나는 완료되지만 프로젝트의 핵심 불확실성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지원은 다음과 같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 첫째, 과제 선정 이후 프로젝트의 근거 구조 (Evidence Architecture)와 위험 지형 (Risk Landscape)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
⚫ 둘째, 연구비의 사용계획을 고정된 시험 목록으로만 평가하지 말고, 핵심 불확실성과 의사결정 기준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 셋째, 새로운 근거에 따라 연구계획과 예산을 수정할 수 있는 공식적인 반복 개선 절차를 허용해야 한다.
⚫ 넷째, 실제 신약개발 경험을 가진 프로젝트 설계사(Project Architect)와 실행 전문가의 참여 비용을 정식 지원항목으로 인정해야 한다.
⚫ 다섯째, 개별 시험의 완료뿐 아니라 후보물질의 우선순위 조정, 적응증 최적화, 환자군 정의, 실패의 조기 발견, 기술이전 가능성 향상과 같은 의사결정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일종의 “실행형 과제” 또는 “프로젝트 발전중심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다. 현재의 정부 연구 개발 지원금은 원래의 계획이 3-5년간 정확히 그대로 시행되어야만 예정했던 결과를 도출할 수 있고 그래야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다이내믹한 신약개발 과정의 특성을 반영하는 연구 개발 과제 운용구조로 볼 수 없다.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증명하는 기초 과학적 연구 과제 지원 방안이 신약개발 과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실행형 과제” 또는 “프로젝트 발전중심 프로그램”은 특정 시험법을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사업이 아니다. 프로젝트별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정의한 뒤, 그 질문에 답할 근거를 만들고, 결과에 따라 다음 결정을 반복적으로 수정하는 데 사용되는 유연한 지원이어야 한다. 예산도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된 항목으로 배분할 필요는 없다. 프로젝트의 초기 위험 지형도에 따라 1차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주요 근거가 확보될 때마다 재평가를 거쳐 다음 단계의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이 더 적절하다.
지원의 종료 기준도 단순한 과제 기간이나 보고서 제출이 되어서는 안 된다.
⚫ 핵심 가정이 검증되었는가?
⚫ 가장 큰 위험이 줄어들었는가?
⚫ 프로젝트가 계속, 피벗, 개선 또는 중지 중 하나의 명확한 Decision에 도달했는가?
⚫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계획이 만들어졌는가?
이러한 질문이 지원 성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좋은 정부 지원은 모든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시키는 지원이 아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는 더 빠르게 전진시키고, 방향 수정이 필요한 프로젝트는 조기에 방향의 개선을 유도하며, 핵심 가정이 무너진 프로젝트는 더 큰 비용이 발생하기 전에 중단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정책 성과이다.
▶ 민간 CRO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 지원의 단편성을 민간 CRO가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내외에는 약리, 의약화학, DMPK, 독성, 바이오분석, CMC, 임상시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전문성을 가진 CRO가 존재한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CRO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규모가 작은 바이오벤처가 모든 시설과 전문가를 내부에 보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문적인 시험을 적절한 품질과 일정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CRO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CRO는 기본적으로 의뢰받은 시험을 계약된 조건에 따라 수행하는 조직이다. 시험계획서에 따라 연구를 수행하고, 품질과 일정을 관리하며, 결과와 보고서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다. 이 역할은 중요하지만 프로젝트 운영과는 다르다.
⚫ 어떤 시험을 지금 수행해야 하는가?
⚫ 현재 가장 큰 불확실성은 무엇인가?
⚫ 제안된 시험이 실제 Decision을 바꿀 수 있는가?
⚫ 더 적절한 모델이나 평가법은 없는가?
⚫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떤 후속연구를 수행해야 하는가?
⚫ 후보물질과 적응증, 환자군 또는 개발전략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개별 CRO의 통상적인 업무 범위를 넘어선다. 한 프로젝트가 여러 CRO를 이용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 약리시험은 한 기관에서 수행한다.
⚫ PK는 다른 기관이 담당한다.
⚫ 독성은 또 다른 CRO에 맡긴다.
⚫ 바이오마커 분석과 CMC는 각각 별도의 기관이 수행한다.
각 기관은 자신이 맡은 시험에는 전문성이 있지만, 서로 다른 시험 결과를 하나의 근거 구조와 위험 지형 안에서 통합해 해석하는 역할은 맡지 않는다. 그 결과 모든 시험이 계획대로 완료되었는데도 프로젝트의 핵심 질문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효능과 노출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도 이를 통합적으로 분석할 주체가 없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새로운 기회인지, 화합물의 위험요소인지, 임상적 활용 제한 위험 요소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추가 시험만 반복할 수도 있다.
CRO의 사업모델에도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CRO의 성과는 계약된 시험을 일정과 품질 기준에 맞게 완료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꾸거나 어떤 시험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CRO의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즉, 현재 환경하에서는 CRO들이 이러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인력도 그리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과학적 타당성, 임상적 가치 및 사업적 가치까지 CRO가 책임지도록 요구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문제는 CRO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CRO가 가장 잘하는 전문적 시험 수행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그 위에서 프로젝트 전체를 설계하고 연결하며 판단하는 별도의 기능을 마련해야 한다. 개별 시험을 잘 수행하는 능력과 성공 가능한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 전문가를 모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약개발에는 질환 생물학, 약리학, 의약화학, DMPK, 독성학, 제제학, CMC, 바이오마커, 임상개발, 규제과학, 특허, 사업개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업과 지원기관은 흔히 자문단을 구성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이러한 자문은 분명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전문가를 한자리에 모았다고 해서 전문성이 자동으로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약리학 전문가는 추가적인 효능시험을 제안할 수 있다.
DMPK 전문가는 노출과 대사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독성 전문가는 안전성 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임상 전문가는 환자 선별과 바이오마커를 요구할 수 있다.
CMC 전문가는 현재 후보물질의 제조 가능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각각의 의견은 모두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과 예산은 제한되어 있다.
⚫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 서로 충돌하는 제안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 어떤 결과에서 후보물질을 변경할 것인가?
⚫ 어떤 결과에서 적응증을 방향 전환할 것인가?
⚫ 누가 실제 시험기관을 선정하고 수행을 관리할 것인가?
⚫ 결과가 나오면 누가 이를 다시 통합하여 다음 의사결정으로 연결할 것인가?
일회성 자문만으로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자문단은 특정 시점의 검토와 권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자문이 끝난 뒤 기업은 여러 의견을 스스로 해석하고, 시험의 우선순위를 정하며, 수행기관을 찾고, 계약과 연구를 관리해야 한다. 결과가 나오면 다시 처음부터 전문가들에게 배경을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문의 맥락이 사라지고 서로 다른 의견이 단편적인 시험 목록으로 변한다. 근거 기반 반복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전문가의 집합이 아니다. 전문가 역량의 통합이다.
자문과 실행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판단은 구체적인 시험 설계, 수행기관 선정, 일정과 비용, 품질기준과 의사결정 기준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시험 결과가 나오면 같은 전문가들이 다시 참여하여 결과를 해석하고 다음 실행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일회성 자문위원회가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의 통합 실행팀이다.
▶ 신약개발 설계자 (Project Architect, PA)라는 새로운 역할
통합 실행팀의 중심에는 프로젝트 전체를 지속적으로 이해하고 운영하는 책임자가 필요하다. 이를 신약개발 설계자 (Project Architect, PA)라고 부를 수 있다. PA는 모든 분야의 최고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이 질환 생물학, 의약화학, 독성, CMC, 임상과 사업개발을 모두 최고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PA의 핵심 역량은 모든 답을 직접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정의하고, 필요한 전문가를 적절한 시점에 참여시키며,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와 판단을 하나의 근거 구조와 의사결정 경로로 통합하는 것이다. PA는 먼저 프로젝트의 현재 상태를 진단한다.
⚫ 타깃의 사람 질환 관련성은 어느 수준인가?
⚫ 현재 후보물질의 주요 위험은 무엇인가?
⚫ 가장 큰 불확실성은 타깃의 문제인가, 물질의 문제인가, 임상 적용 가능성 위험인가, 개발 관련 위험 요소인가?
⚫ 현재 확보된 데이터 가운데 실제 의사결정을 지지하는 근거는 무엇이고, 단순한 관찰 데이터는 무엇인가?
⚫ 다음 투자나 개발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PA는 실제 실행 전문가들과 함께 근거 구조와 위험 지형도를 구성한다. 그다음에는 실행 가능한 계획을 만든다.
⚫ 어떤 연구를 먼저 수행할 것인가?
⚫ 어떤 모델과 평가법을 사용할 것인가?
⚫ 어떤 결과가 나오면 계속 진행, 보류, 피벗, 방향 수정 또는 개발 중지할 것인가?
⚫ 시험은 어디에서 수행할 것인가?
⚫ 예산과 일정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 시험 간 의존성과 순서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 어떤 결과가 나오면 다시 전체 전략을 검토할 것인가?
PA는 이 계획을 보고서로 끝내지 않는다. 수행기관과 전문가를 연결하고, 시험계획을 검토하며, 실행과정을 추적하고, 결과의 품질을 확인해야 한다. 새로운 근거가 나오면 이를 기존 근거 구조에 통합하고 위험 지형도를 업데이트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의사결정을 주도한다. PA는 기업의 경영진이나 연구책임자를 대체하지 않는다. 최종적인 투자와 사업적 결정은 기업이 내린다. 그러나 PA는 기업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과학, 개발, 실행과 사업의 논리를 하나로 연결한다. 좋은 PA는 연구를 대신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사람이다.
▶ PI가 신약개발 프로젝트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가?
여기에서 한국의 연구개발 과제 운영방식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신약개발 연구과제는 연구개발 책임자(Principal Investigator, PI)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운영해야 하는가? 아니면 개발단계로 전환되는 시점부터 신약개발 설계자 (PA)가 프로젝트 운영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많은 신약개발 과제에서는 기초연구를 수행해 온 PI가 개발과제에서도 자연스럽게 전체 책임자가 된다. 새로운 타깃을 발견하고 초기 효능을 확인한 연구자가 이후 후보물질 최적화, 비임상 개발, 바이오마커, CMC, 임상전략과 사업화 방향까지 계속 이끌어 가는 구조이다. 물론 최초의 바이올로지와 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PI일 가능성이 높다. PI의 참여 없이 프로젝트가 올바르게 발전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수한 기초연구자가 반드시 신약개발 프로젝트 전체를 가장 잘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I의 핵심 역할은 과학적 가설을 세우고, 연구의 타당성과 재현성을 확보하며,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반면 신약개발 설계자(PA)의 핵심 역할은 서로 다른 분야의 근거를 통합하고, 위험 지형도를 평가하며, 다음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전문가와 수행기관을 연결하여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반복 개선하는 것이다. 두 역할은 일부 겹칠 수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기초연구 단계에서는 PI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후보물질이 개발자산으로 전환되고 적응증, 약물성, 독성, CMC, 임상전략과 사업화 가능성을 동시에 검토해야 하는 단계에서는 PI 한 사람에게 두 역할을 모두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현재의 과제 구조에서는 PI가 연구책임자인 동시에 사실상 PA의 역할까지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역할에 필요한 권한과 전문인력, 운영예산, 인센티브와 평가기준은 별도로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PI는 자신의 전문영역을 넘어선 수많은 의사결정을 맡게 되고, 외부 전문가는 일회성 자문에 머물며, 프로젝트 전체를 통합적으로 운영할 책임자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신약개발 과제는 PI 단독책임 구조만을 전제로 할 것이 아니라 PI와 PA가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새로운 과제운영 모델을 검토해야 한다. PI는 타깃 Biology와 핵심 과학가설, 연구의 질과 새로운 발견을 책임진다. PA는 근거 구조, 위험 지형도, 의사결정 경로의 설계와 실행 프레임워크의 시행 및 반복 개선을 책임진다. 두 사람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책임을 가진 공동 리더이다. PI가 “이 가설은 과학적으로 타당한가?”를 묻는다면, PA는 “이 가설을 성공 가능한 신약개발 프로젝트로 만들려면 지금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과제의 단계에 따라 두 역할의 비중도 달라질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는 PI가 중심이 되어 발굴 단계의 연구를 수행하고 PA가 개발 가능성을 함께 검토한다. 후보물질 선정과 비임상 전환 단계에서는 PI와 PA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개발단계가 진행될수록 PA는 DMPK, 독성, CMC, 임상, 규제와 사업개발을 통합하고, PI는 핵심 바이올로지와 새로운 과학적 질문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이러한 공동운영 구조가 작동하려면 과제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과제 신청 단계에서 PI와 PA의 역할과 권한을 구분해야 한다. PA의 인건비와 프로젝트 운영비를 공식적인 연구비 항목으로 인정해야 한다. 주요 의사결정 단계에서는 PI와 PA가 공동으로 근거와 위험요소를 검토하되, 과학적 판단과 개발 의사결정의 책임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성과평가 역시 논문과 특허뿐 아니라 후보물질의 질 향상, 적응증 최적화, 위험의 조기 발견, 개발기간 단축, 기술이전 가능성 향상과 합리적인 중단 결정까지 포함해야 한다. 모든 과제에 별도의 PA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탐색적 기초연구 단계에서는 기존 PI 체계가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명확한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상당한 공공자금이 투입되는 신약개발 과제라면, 누가 Project Architect의 역할을 수행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PI와 PA가 동일인이라면 그 사람이 두 역할을 수행할 역량과 시간, 권한을 갖추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별도의 PA를 참여시켜 공동운영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제는 “누가 연구책임자인가?”만 물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누가 이 연구를 성공 가능한 신약개발 프로젝트로 설계하고, 실행하며, 새로운 Evidence에 따라 반복적으로 수정할 것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 실행 전문가(Working Expert)는 자문가(Advisor)와 달라야 한다.
PA 주위에는 프로젝트의 질문과 단계에 따라 다양한 실행 전문가(Working Expert)가 참여한다. 실행 전문가는 일회성으로 의견을 제공하는 자문가(Advisor)와 다르다. 예를 들어 초기 타깃 검증 단계에서는 질환 생물학, 사람 유전학과 환자 조직 전문가가 중심이 될 수 있다. 후보물질 최적화 단계에서는 의약화학, 약리학, DMPK와 독성 전문가가 중요해진다. 임상전환 단계에서는 바이오마커, 임상약리, 규제, CMC와 임상개발 전문가의 참여가 확대된다. 모든 전문가가 모든 회의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프로젝트의 현재 질문에 필요한 전문가를 적시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 번 참여한 실행 전문가는 단순히 권고문을 남기고 떠나지 않는다. 자신이 제안한 근거의 설계와 해석에 반복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DMPK 전문가는 “노출을 더 확인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종에서 어떤 matrix를 사용하고, 전체 농도가 아니라 유리형 농도를 측정해야 하는지, 어떤 노출 수준을 계속 기준으로 볼 것인지, 결과가 불충분할 때 구조 최적화와 용량전략 가운데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까지 함께 결정해야 한다. 임상 전문가는 “바이오마커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환자군을 구분하기 위한 바이오마커인지, 초기 개발 단계에서 어떤 환자 조직과 공개 데이터를 활용할 것인지, 임상시험에서 실제로 측정 가능한지, 동반진단 도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지까지 검토해야 한다.
실행전문가는 조언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실제 업무에 참여한다. PA와 분야별 실행 전문가, 실제 시험을 수행하는 CRO와 대학·병원 연구기관이 하나의 실행 프레임워크 안에서 연결될 때 전문성이 프로젝트의 실행력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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